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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읽기

한국인은 왜 돈을 내고서라도 잠을 살까|취침 미루기와 플라세보 효과

와이앤하우 에디터 2026. 11.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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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돈을 내고서라도 잠을 사는 이유는 취침 미루기와 플라세보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낮에 빼앗긴 내 시간을 밤에 되찾느라 스스로 잠을 미루고, 잠과 함께 잘 잤다는 믿음까지 돈으로 산다.

 

핵심 요약

 

  • 취침 미루기는 왜 잠이 모자란지에 답한다. 한국인은 잘 시간이 없어서만이 아니라, 낮에 빼앗긴 내 시간을 밤에 되찾느라 스스로 잠을 미룬다.
  • 플라세보 효과는 왜 돈을 내고서라도 잠을 사는지에 답한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잠만이 아니라 잘 잤다는 믿음이고, 그 믿음은 실제로 다음 날을 바꾼다.
  • 그래서 수면 시간 최하위권과 수면 산업 3조 원은 모순이 아니다.

 

 

한국은 잠이 모자란 나라다. OECD가 2021년 회원국의 수면 시간을 비교했더니, 한국인은 하루 평균 7시간 51분을 자서 일본과 함께 최하위권이었다.

 

OECD 평균(8시간 27분)보다 30분 넘게 짧다. 2024년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130만 명으로, 2020년보다 26% 늘었다.

 

 

잠이 모자란 만큼 잠에 쓰는 돈은 늘었다. 침대·베개·이불부터 수면을 분석해 주는 기기와 앱까지, 국내 수면 산업은 2011년 4,800억 원에서 2021년 3조 원으로 10년 만에 여섯 배 넘게 커졌다. 잠(sleep)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슬리포노믹스’라는 말도 생겼다.

 

그런데 수면 앱을 깔고 새 베개를 산 사람이, 그 베개를 베고 누워 새벽까지 숏폼을 넘긴다. 여기에는 두 모습이 있다.

 

밤마다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잠을 미루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모자란 잠을 돈을 내고서라도 사려는 사람이다. 둘은 대개 같은 사람이다.

 

취침 미루기: 잠이 싫은 게 아니라 오늘을 끝내기 싫다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사람은 심리학의 취침 미루기(bedtime procrastination)가 설명한다. 밖에서 막는 일이 없는데도, 자려고 마음먹은 시간보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행동이다.

 

2014년 네덜란드 심리학자 플로르 크루서(Floor Kroese) 연구진이 이것을 미루기의 새로운 영역으로 소개했다. 연구진은 성인 177명에게 ‘자려던 시간보다 늦게 잔다’, ‘제때 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같은 아홉 문항에 답하게 했다. 잠을 많이 미루는 사람일수록 평일 수면 시간이 짧았고, 잠이 모자라다고 느끼는 날이 많았다.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덜 미뤘다. 응답자의 30% 가까이는 평일에 6시간 이하로 잤다.

 

보통의 미루기는 하기 싫은 일을 미룬다. 시험 전날 공부 대신 책상 정리를 하는 식이다. 그런데 잠은 하기 싫은 일이 아니다.

 

연구진도 이 점을 짚었다. 잠을 미루는 사람은 자기 싫은 게 아니라,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기 싫다.

 

이 현상에는 ‘보복성’이라는 말이 붙었다. 2010년대 말 중국에서 생긴 표현을 2020년 6월 작가 대프니 K. 리(Daphne K. Lee)가 트위터에 소개하면서, 보복성 취침 미루기(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라는 말이 영어권에 퍼졌다. 낮 동안 내 뜻대로 쓴 시간이 없다고 느낀 사람이, 잠을 줄여서라도 밤에 그 시간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 보복이 일어나기 좋은 나라다. 2025년 한국 취업자는 한 해 평균 1,833시간을 일했다. OECD 평균보다 97시간 길고, 회원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길다.

 

퇴근하고 씻고 누우면 그제야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온다. 숏폼은 한 편이 짧아서 ‘하나만 더’를 끊을 지점이 없다. 이 사람이 미루는 것은 잠이 아니라 오늘의 끝이다.

 

그럼 왜 잠을 돈으로 살까

잠을 미루는 사람도 잠이 모자란 것은 안다. 줄어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대신 잠의 질을 사려 한다. 같은 여섯 시간을 자더라도 더 깊이 자고 싶어서 베개를 바꾸고, 아침마다 수면 점수를 알려 주는 앱을 깐다.

 

플라세보 효과: 잘 잤다고 믿으면 머리도 잘 돌아간다

 

잠을 사는 사람은 의학과 심리학의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가 설명한다. 치료 그 자체가 아니라, 치료를 받았다는 믿음 때문에 몸과 마음이 실제로 달라지는 현상이다.

 

플라세보는 라틴어로 ‘나는 기쁘게 하리라’라는 뜻이다. 미국 마취과 의사 헨리 비처는 강한 진통제인 줄 알고 식염수를 맞은 병사들이 실제로 나아지는 것을 보고 이 현상을 연구했고, 1955년 논문 「강력한 플라세보」로 이 효과를 널리 알렸다.

 

믿음이 잠에도 통한다는 것을 보인 실험이 있다. 2014년 미국 콜로라도칼리지의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드라가니치(Christina Draganich)와 크리스티 에르달(Kristi Erdal)은 대학생 50명에게 먼저 5분짜리 강의를 했다. 보통 사람은 잠의 20~25%가 렘수면이고, 그보다 적으면 학습과 기억 시험 성적이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어 학생들의 머리에 장비를 붙이고 지난밤 렘수면 비율을 읽어 낸다고 했다. 그런 기술은 없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절반에게 ‘28.7%, 평균 이상’, 나머지에게 ‘16.2%, 평균 이하’라고 알려 줬다.

 

그다음 1.6초마다 들려주는 숫자를 바로 앞 숫자와 더해 답하는 시험을 쳤다. 50문항 가운데 ‘잘 잤다’는 말을 들은 학생은 평균 34.8개, ‘못 잤다’는 말을 들은 학생은 22.1개를 맞혔다.

 

학생들이 스스로 느낀 잠의 질은 점수와 상관이 없었다. 시험 감독이 조건을 모르게 한 두 번째 실험(114명)에서도 같은 방향의 결과가 나왔다.

 

설탕 알약이 진통제 노릇을 하듯, 이 실험에서는 숫자 하나가 알약 노릇을 했다. 아침에 ‘수면 점수 90점’을 본 날은 몸이 가볍고, ‘50점’을 본 날은 같은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수면 용품과 앱이 파는 것에는 잠과 함께 ‘잘 잘 수 있다’, ‘잘 잤다’는 믿음이 들어 있다. 그 믿음은 가짜가 아니다. 실험에서 그 믿음은 실제 점수를 바꿨다.

 

돈을 낸 일도 믿음을 키운다. 2005년 마케팅 연구에서는 같은 에너지 음료라도 할인가에 사서 마신 사람이 정가에 사서 마신 사람보다 퍼즐을 덜 풀었다. 값을 치른 만큼 기대가 커지고, 커진 기대가 다음 날을 바꾼다.

 

잠을 미루는 밤, 잠을 사는 아침

두 개념은 한 사람의 두 행동을 설명한다. 취침 미루기는 왜 잠이 모자란지에 답한다. 한국인은 잘 시간이 없어서만이 아니라, 낮에 빼앗긴 내 시간을 밤에 되찾느라 스스로 잠을 미룬다.

 

플라세보 효과는 왜 돈을 내고서라도 잠을 사는지에 답한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잠만이 아니라 잘 잤다는 믿음이고, 그 믿음은 실제로 다음 날을 바꾼다.

 

그래서 수면 시간 최하위권과 수면 산업 3조 원은 모순이 아니다. 밤에 미룬 잠을 낮에 돈으로 메우는, 같은 하루의 앞뒤다.

 

새벽까지 휴대폰을 넘기는 자신을 의지가 약하다고만 볼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붙잡고 있는 것은 휴대폰이 아니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내 것이 되는 하루다.

 

자주 묻는 질문

취침 미루기란 무엇일까?

밖에서 막는 일이 없는데도, 자려고 마음먹은 시간보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행동이다. 2014년 네덜란드 심리학자 플로르 크루서(Floor Kroese) 연구진이 이것을 미루기의 새로운 영역으로 소개했다.

 

플라세보 효과란 무엇일까?

치료 그 자체가 아니라, 치료를 받았다는 믿음 때문에 몸과 마음이 실제로 달라지는 현상이다. 플라세보는 라틴어로 ‘나는 기쁘게 하리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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